애니 - 엔젤하트

2009. 6. 3. 19:43 | 소감


8-90년대 유명했던 시티헌터의 작가가 시터헌터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 새로만든 작품이다. 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지만, 난 후속작이라고 생각한다. 만화의 설정이란 늘 미묘하게 변하는 것 이기도 하고, 이전 설정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독자를 기만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30년 가까이 그리고 있는 작품이니 만큼 더 높은 이상을 위한 한번의 도약이라고 생각해주고 싶다.

시티헌터는 85년부터 99년까지 만화책 35권, 문고본 18권, TV시리즈 140편, TV스페셜 3편, 극장판 3편 등이 제작되었고, 엔젤하트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29권이 나왔고, 2005-2006년에는 단행본 16권정도까지의 내용으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 (애니메이션 오리지날 스토리는 없다)

시티헌터와 엔젤하트는 기본적으로 총을 들고 싸운다. 주인공들은 이 방면에 있어서 모두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전투에 있어 세계최고가 되었지만, 그만큼 잔혹한 경험들도 있고, 소중한 사람을 한두번씩 잃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과거를 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도와준다. 이야기들은 모두 감동적이며, 서로가 서로에 대해 사려가 깊다.

엔젤하트에는 그들의 자식들이 등장한다.
"죽을 곳을 찾아 헤메던 우리들이, 아버지가 되어 살아간다니 믿을 수 없다."  라는 대사가 시티헌터와 엔젤하트의 구분을 가장 명확히 해주는 대사이다. 국적도 없고, 이름도 없고, 항상 총을 들고 죽음과 맞닿아 살아가는 그들이 자식이 생긴다니 어떻게 보면 상상도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될 일 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작가 본인도 아버지가 되어버려서 일까? 작가가 생각해낸 주인공의 자녀 탄생 스토리는 실로 대단하다.

시티헌터의 여주인공이 엔젤하트에서는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채 시작된다. 장기기증자였던 그녀는 심장적출 후 이송도중 도난당한다. 도난당한 심장은 살인을 비관해 자살해버린 거대조직의 초일류 암살자의 이식 수술에 사용된다. 그 암살자는 15세 소녀였는데, 이식된 심장의 기억에 이끌려 남자 주인공을 찾아가 그의 딸이 된다.
이 설정은 시티헌터에 어울리지 않는 자식을 갖기 위한 큰 난제 두 가지를 자연스럽게 해결해 줬다. 남자 주인공이 아기를 키울일도 없으며, 자식이 자기만큼 실력이 있어서 스토커 처럼 지켜줘야할 필요도 없다.

엔젤하트는 독특한 속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시티헌터의 주인공들은 엔젤하트로 오면서 다들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다. 연인으로서 친구로서 서로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루어질 수 가 없게 되었고, 이전의 주인공들은 이제 청춘의 시기를 다 보내버린 시점의 이야기이다. 서로가 소중했던 사람들간의 미묘한 사랑 감정이 만화 곳곳에서 들어난다. 하지만 그들은 그 감정을 쉽게 들어내거나 받아줄 수 없다. 이 애틋한 설정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고 현실적인 내용이라 생각했다.

만화란 늘 그렇다. 포기하지 말 것. 도망가지 말 것. 미래는 정해지지 않은 것. 소중한 사람을 위해 노력할 것. 나쁜 과거에 얽매이지 말 것. 그렇지만 엔젤하트는 다음 세대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음 세대들과 함께하는 이전 세대들을 위한 이야기 이다. 도망다니는 것은 어른들 뿐이고 아이들은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여러 에페소드들을 통해 끝없이 이 주제를 일깨워 준다.

시티헌터나 엔젤하트는 일단 한국에서는 성인만화이다. 배드씬이나 노출장면은 없으나, 묘사(남자를 부끄럽게 하는)와 대사에 있어서 19금작품이다. 그러한 요소들이 엔젤하트에서는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지만 작가 본인도 딸아이를 가지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등장한다. 피상적인 정서적으로 봤을 때 분명 남성팬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과거 시티헌터의 팬들이 지금은 대부분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어있을터이다.

나는 사실 만화가를 늘 동경했다. 10년, 20년 이상을 한 작품만을 위해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작품들은 내용도 대단하다. 연륜이 느껴지는 무수히 많은 교훈들도 실제 삶에 많은 조언이 된다고 생각한다. 만화책이나 보는 아버지는 좀 이상할까? 어쨌든 작가는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만화는 19금이므로 아이들로부터 숨기라고. 하하.


Posted by 구운소금.